냉혈 검사에서 허세 오빠까지..'천의 얼굴' 송영규 is 뭔들

2016. 5. 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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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연이 주연이다
‘천상의 약속’ ‘허풍달’로 인기 배우 송영규

송영규. 사진 강창광 기자 <A href="mailto:chang@hani.co.kr">chang@hani.co.kr</A>

“당신, 짐 캐리 같아~. 빨리 갈아입어.”

인터뷰가 끝날 즈음 나타난 아내가 초록색 정장을 맞춰 입은 남편한테 핀잔을 준다. 멋있기만 한데, 괜스레 장난을 거는데, 어머 이 남자 꼼짝을 못한다. “응 알았어~.” 어젯밤에는 장모댁에서 자고 왔단다. “그냥. 아들이 없고, 저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셔서 장모님을 친엄마처럼 대하고 있어요.” 말 잘 듣는 남편에, 살가운 사위에, 주말에는 딸과 뮤지컬도 보러 다니는 다정한 아빠. 티브이 밖 송영규(46)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같다.

티브이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달라진다. 빈틈없이 냉철한 검사, 악랄한 살인마, 트랜스젠더, 순박한 아저씨 등 다양한 인물로 변신해 왔다. 2007년 <메리대구 공방전>(문화방송)으로 드라마에 데뷔해 2012년 <추적자>(에스비에스)에서 비열한 검사로 관심을 끌더니, <너희들은 포위됐다>(2014·에스비에스)의 연쇄살인마, <미생>(2014·티브이엔)의 샐러리맨, <리멤버>(2015·에스비에스) 정의로운 변호사 등 작품마다 새로운 얼굴로 주연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런 그가 요즘에는 <한국방송2>의 일일드라마 <천상의 약속>(월~금 저녁 7시50분)에서 코믹 연기로 또 한번 변신했다. 밤무대를 전전하는 한량 ‘허풍달’로 나오는데, 주윤발을 흉내내고, 허세를 부리며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모습 등으로 화제를 모은다. 복수극인 드라마에서 그가 나올 때만 웃음꽃이 핀다. 지난 20일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난 송영규는 “진중한 드라마인데, 내가 나오는 장면만 너무 튀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며 웃었다. 옷이 초록색이어서가 아니라 ‘변신의 귀재’라서 짐 캐리일까.

짐 캐리처럼 입고 온 ‘변신의 귀재’
“너무 평범해서 매번 다른 색 입혀”
‘추적자’로 존재감 뒤 다양한 변신
비열한 검사·트랜스젠더·허세오빠…
방송가 ‘장면 잘 따먹는 배우’ 호평



18년간 연극·뮤지컬 내공 쌓아
평범한 외모에도 표정연기 일품
배우 류승룡·황정민이 동기
“작품 기준은 무조건 다 하기
멜로 연기에도 선택받고 싶어”

■ 변신의 비법은 노력과 평범한 외모? 방송관계자들은 그를 두고 “장면을 잘 따먹는 배우”라고 평한다. 주어진 역을 잘 연기하면서 시청자 반응을 불러와, 제작진이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추적자>도 2~3회 나오고 마는 인물이었는데 점차 비중 있는 배역이 됐고,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살인마 역도 마찬가지였다. <천상의 약속>에서도 즉흥대사(애드리브)로 드라마의 감칠맛을 더한다. 선글라스를 쓰고, 입에 성냥개비를 문 모습으로 극중 전 부인(오영실)한테 “잘 있었어?”라고 말하는 평범한 대사를 “우리 예쁜 꼬맹이 잘 있었어~”라며 오글대는 살을 붙여 장면을 풍성하게 했다. 송영규는 “작가가 쓴 대본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도 배우의 일이라고 생각해 다양한 준비를 해온다”고 했다. “그러나 작가와 감독의 성향에 따라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준비한다”고 말했다.

어떤 배역이 주어져도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련미는 탄탄한 기본기에 성실한 연기 생활의 결과일 것이다.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를 졸업하고 1994년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이래, 뮤지컬 출연작만 60편에 이른다. “연극은 더 많이 해서 작품 수를 셀 수가 없어요.” 1994년 데뷔작인 어린이 뮤지컬 <머털도사>부터 <레미제라블>(1998) <안중근>(1999), 남장 여자로 나온 <한여름 밤의 꿈>(1999) 등 무대에서 수백 가지 인물을 연기한 것이 영화와 드라마에서 ‘변신의 틀’을 빚었다. 올해 1월 개봉한 영화 <하프>(감독 김세연)에서 트랜스젠더 역을 실제 정체성이 의심될 정도로 훌륭하게 소화해 낸 것도 “뮤지컬에서 연습한 것이 도움이 됐고, 무대 등을 오가며 그동안 봐왔던 다양한 사람들을 참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얼굴로 어떻게 배우가 됐을까 싶은 ‘평범한 외모’도 다양한 변신을 가능하게 했다”고 믿는다. “너무 평범하니까 나를 뭔가 다른 색깔로 색칠해 보려고 노력하는 거죠.” 이른바 ‘신 스틸러’라 불리는 여러 배우들이 과한 표정과 행동 등으로 감초 연기를 하는 것과 달리 그는 움직임이 적다. 외모 등을 크게 바꾸지 않는데, 눈빛이나 입술의 떨림 등 미세한 얼굴의 변화로 작품마다 서로 다른 느낌을 준다. 그는 “헤어스타일이나 안경, 수염 외에는 외모에서 줄 수 있는 변화가 크게 없어서 표정연기에 특히 신경을 쓴다”고 했다. 실제로 <리멤버>의 알고 보니 내부자였던 변호사나, <추적자>의 비열한 검사는 말끔한 정장에 안경 등 외모는 비슷하지만, 따뜻한 눈빛 등으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뿜어냈다.

■ 조연의 무게 알아…꾸준히 연기하고파 그의 노력이 세상의 인정을 받기까지는 드라마 데뷔 기준으로 봐도 10여년이 걸렸다. <추적자>로 주목받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고 한다. “2010년 <제중원>(에스비에스)에 출연하기 전에는 고층 아파트의 창문을 닦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연극할 때는 막노동도 했어요. 여유가 생겨 아르바이트를 안 하게 된 건 <추적자>가 끝난 뒤예요.”

“연기할 때 느껴지는 희열이 좋았다”는데,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단다. “연극에서 왔다고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작품이 엎어지기도 하고.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이니까, 기다리는 게 힘들었죠.” 그런데도 떠나지 않은 이유는? “할 줄 아는 게 연기뿐이어서요. 연기를 잘하고 싶어요.”

선택받는 소중함을 알기 때문일까, 드라마 데뷔 이후 기회만 되면 가리지 않고 출연했다. 2012년 이후 지금까지 한 해도 쉬지 않고 <신의 저울>(2008·에스비에스), <즐거운 나의 집>(2010·문화방송) 등 꾸준히 작품에 출연했다. <미생>부터 <응답하라 1988>(2016·티브이엔) 등 한두 장면 출연하는 작품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작품 선택 기준이 “무조건 다 하기”라고 했다. “잠깐 나오는 역할도 마다않고 감사하게 연기해요. 배우가 선택을 받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요.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못하겠어요. 하하.”

연기만 바라보며, 인내하고 버티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왔다. 사람들도 알아봐 주고, 일도 끊기지 않지만, 고생 끝에 ‘빵 터지는’ 낙이 오지 않은 건 아쉽지 않을까. 배우 류승룡·황정민, 감독 장진·장항준 등 서울예대 선후배, 동기들과 연극판에서 함께 어울렸던 여러 친구들은 모두 다 잘됐다. 실력에서 그도 뒤지지 않는다. “‘난 왜 안될까’ 자책한 적은 없어요. 전 얼굴을 알고 이름을 모르는 게 더 좋아요. 배역으로 불러주시는 건 그만큼 연기를 잘했다는 거니까요.”

조연이 있어야 주연도 빛나는 법. 조연이라는 이름의 가치를 높게 산다는 그는 “꾸준히 선택을 받아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 큰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는 얘기인데, 단 하나…. “요즘은 멋있는 사람으로 나오고 싶더라고요. 너무 비열한 인물을 많이 했더니. 음…, 멜로연기를 하고 싶달까?” 마침 그때, 그를 데리러 온 아내가, 인터뷰 장소에 들어왔다.

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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